제목 : 새로운 예술계를 찾아서
1. ‘예술계’란 무엇일까?
갤러리를 지나다 보면, 어느 날은 유난히 많은 이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와인을 나누며 웃음이 풍성한 모습을 보게 된다. 공연장이나 극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는 동료들이고, 규모가 크면 기자들과 평론가들도 나타난다. 이것이 ‘예술계’란 단어가 내 머리 속에 제시하는 이미지이다. 쉽게 말하자면 ‘예술’을 전공하여 창작을 하거나 ‘예술활동’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소위 ‘업계’의 사람들이다. 이것이 적절한 이해일까?
‘예술계’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들은 연구, ‘단토와 부르디외, '예술계(artworld)' 개념을 보는 두 개의 시선[i],을 통해 참고할 수 있었다.
즉, 아서단토가 예술사와 예술이론을 중심으로 예술계와 관련한 개념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논의는, 이후 베커의 ‘예술계 개념의 사회학적 변용’ 부분에서 예술가, 미술관, 언론, 비평가 등의 실체적 구성요소들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서 내 머리 속에 그려진 ‘예술계’의 이미지와 겹쳐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오늘날의 ‘예술계’에 대한 이해로 적절한 것일까?
2. 관객의 위치는 어디인가?
갤러리 한 쪽에 수북하게 쌓인 사탕들, 또 중앙에는 여러 장의 종이들이 놓여져 있고, 관객들은 이것들을 원하는 만큼 가져간다[ii].
오늘날 갤러리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이것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또 이 상황에서 관객의 위치는 어디일까?
어떤 책은 ‘대다수의 비평가와 철학자들이 현대의 예술적 실천을 포용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전 세대에 의해 미결상태로 남거나 해결된 문제들에서부터 출발한 분석을 통해서는 현대예술의 독창성과 타당성을 이해할 수 없다’[iii]고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90년대 예술에 있어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이 같은 ‘관객참여방식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예술활동이 비교적 분명한 방식으로 ‘예술계’를 구분해 왔고, 그 과정에서 관객은 대체로 비예술계로 구분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대에 현대미술을 즐기는 관객은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에 참여해오고 있고 또 이런 추세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오늘날의 미디어는 ‘우리 모두는 예술가로 태어났다’는 메시지를 통해 ‘비예술계’에 위치한 관객에게 ‘스스로 예술가 되기’를 격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예술가’를 정의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방식과 또 논란이 있을 것이지만, 그 중심에는 ‘아이디어의 표현’ 즉 ‘예술활동’이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한 사회적 인정이나 수익의 발생을 넘어서 이것을 지속하고 있다면, 개인적으로 ‘예술가’라고 동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교육 및 특정 예술단체의 소속 등의 여부와 무관하게,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활동할 수 있다면 우리는 90년대 이후 확장되어가는 ‘예술계’를 ‘아이디어’란 지평과 더불어 ‘구성요소’란 부분에서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3. 새로운 예술계를 찾아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지켜봤던 작업은 금년 상반기 서울무용센터 입주안무가들의 작업공유회였다. 그 중 권효원 안무가의 ‘주문식안무’[iv]란 작업이 기억에 남는데, 이는 안무가가 시민들의 주제와 이야기를 공모해 이를 현대무용의 작업으로 발전시키는 과정과 그 결과를 보여준다. 비록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본격적인 창작자로서의 예술가로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분명 예술에 대한 이해와 접근의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들이 기존의 일방향 전시나 강연에서 벗어나 워크숍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단순히 결과물을 보여주고 작가의 이야기만을 선택적으로 들려주는 방식을 떠나, 함께 참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구체화하여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예술계의 확장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제 다시 한번 갤러리의 오프닝 모습으로 돌아가보자. 함께 온 이들은 삼삼오오로 정겨운 웃음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다소 어색한 모습으로 와인을 들고 작품을 돌아보는 한 사람이 발견된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작품을 맴돌지만 정작 그에게 다가와 함께 작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때 작가가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며 작품에 참여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그 대화에 참여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역할을 자원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그렇게 새로운 예술계를 발견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i] 단토와 부르디외, '예술계(artworld)' 개념을 보는 두 개의 시선, 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m201_id=10017874
[ii]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https://namu.wiki/w/%ED%8E%A0%EB%A6%AD%EC%8A%A4%20%EA%B3%A4%EC%9E%98%EB%A0%88%EC%8A%A4%20%ED%86%A0%EB%A0%88%EC%8A%A4
[iii] 관계의 미학, 니꼴라부리요
[iv] 권효원 안무가, 주문식안무, https://www.youtube.com/watch?v=oJgJURA_5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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